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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트맨 만화의 탄생

    배트맨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무수히 재생산된 히어로물로 떠오른다. 매력적인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은 그만큼 여러 명배우들이 거쳐간 캐릭터가 되었다. 그렇게 세대를 아우르며 팬들을 사로잡아온 배트맨. 대체 그는 언제 탄생했기에 이토록 오래 재탕되는 히어로가 되었는가? 놀라실 분들도 있겠다. 우리 아버지 세대보다 위다. 배트맨은 예술가 밥 케인과 빌 핑거에 의해 1939년 디텍티브 코믹스(DC) 27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자면 해방 전에 태어난 할아버지가 되시겠다. 그때 등장해 아직도 만화와 영화에서 계속 활약 중이시니 그 팬층이 얼마나 두터우랴. 

    배트맨은 슈퍼맨을 쓰는 작가들이 자신이 받는 보수보다 수십 배나 더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작가 밥 케인이 ‘저 정도는 나도 만들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슈퍼맨 류의 히어로들과는 성격이 달랐다. 이후 후술하겠지만 배트맨은 내재된 슈퍼파워로 싸우는 존재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다. 초기 디자인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배트맨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빌 핑거가 초기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고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배트맨이 탄생했다고 한다. 여러 사료, 증언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배트맨의 실질적인 창작자는 밥 케인이 아니라 빌 핑거였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그 반대로 알고 있었고 실질적인 공로와 명예도 밥 케인이 독차지해 왔다. 

    “빌이야말로 배트맨의 창작자다.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 배트맨의 모든 부분은 빌의 작품이다.”

    DC 전 편집장, 카르마인 인판티노(1925~2014).

    배트맨

    배트맨의 스토리

    배트맨의 가면 속 인물인 브루스 웨인은 부모님과 극장을 다녀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눈앞에서 두 부모를 잃는다. 이 사건으로 범죄자들에 대한 증오와 무력감에 사로잡힌 그는 일종의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에게 죄책감이라는 강박을 하나 더 심어주기 위해 뒤에 추가된 서사로, 그가 자신의 부모와 극장에 가야하는 이유를 제공했다는 것이 있다. 그래서 브루스 웨인은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동시에 간직한 채로 성장하는 캐릭터로 진화(?)한다.

    이렇게 강박증을 가진 채로 자라는 어린 아이의 모습은 우리가 쉬 예측할 수 있다. 학교의 일진 패거리들과 싸우거나, 범죄자에게 무모하게 덤비거나 하는 행동들이다. 그런 그를 변함없이 따뜻한 모습으로, 늘 그의 편에서 지켜주는 존재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지점이다. 그 역할은 바로 웨인가의 충실한 심복, 알프레도가 맡는다.

    그가 박쥐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어느날 본 박쥐가 범죄자들에게 공포를 줄 만한 코드로써 맞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어두운 동굴에서 발견한 박쥐의 이미지에서 공포를 느낀 그가 그런 공포를 자기 부모를 앗아간 범죄자 천국, 고담시의 악당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다는 설정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 나타난 설정인데, 초기의 설정에는 없었던 것이라 한다. 어둠 속에서 나타나 악당을 쳐부수는 히어로. 부모의 죽음과 무기력감, 분노, 죄책감이 어우러진 강박증 환자가 어떻게 순수한 선의, 혹은 정의의 화신이 되겠는가? 그에게 우리가 아는 영웅의 전형성을 요구할 수 없는 지점이다. 그래서 배트맨은 입체적인 면을 지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의 히어로가 된다. 그래서 배트맨은 어느 순간 결함이 있는 인간적 히어로, 때로 광기와 집착에 빠진 다크 히어로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다. 근자에는 안티히어로까지 지평을 넓히고 있다. 

    정의의 사도와 바람둥이 억만장자라는 그의 철저한 이중생활은 자신이 배트맨이라는 신분을 감춰주는 은폐장치이자, 내면의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자신을 향한 조롱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인간적인 내면이야말로 배트맨이라는 서사의 확장성, 지속성의 주요한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는 캐릭터임은 다른 영웅물과 다를 것이 없지만, 배트맨처럼 깊이 있는 서사를 만들기에 좋은 영웅 캐릭터는 드물다. 앞서 서술한 배트맨의 입체적인 인물 상은 단순히 악당을 물리치는 캐릭터를 넘어 인간의 삶과 선과 악, 그리고 그 경계, 삶의 철학 또한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고찰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캐릭터를 본다면 어떤 창작자건 손 한번 대어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배트맨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스토리에 대해서는 이만 마치는 것이 좋겠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에피소드를 정리하는 것이 필자에게 가능한 일일 리가 없지 않은가?

    작품의 성격과 특징

    배트맨은 동시대, 혹은 후에 나타나는 다른 히어로들과 많이 다른 인물이다. 그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상처를 안고 내면의 어둠과 싸우는 상처받은 비초인(평범한 사람)이다. 그의 능력은 금권이고 조금 더 보태자면 천재적인 머리이다. 첨단 기술을 이용한 슈트와 배트카, 오토바이, 무기 등의 장비로 악당을 응징한다. 요즘말로 장비빨이 그의 능력이다. 그와 가장 닮은 히어로라면 아이언맨이 있겠다.

    배트맨은 기존의 영웅들과 결이 다른 히어로다. 앞서 몇 번 언급했듯 내면의 어둠과 투쟁하는 존재다. 그가 악당들과 싸우는 무대로 밤을 선택한 것은 보호색 이상으로 그가 어둠에 속한 존재라는 상징이다. 박쥐라는 상징도 그의 이런 내면을 대변한다. 어두운 어린 시절, 폭력을 응징하기 위해 그와 같은 폭력으로 대응하며 잠식되어 가는 자아. 어둠 속에서 어둠, 악당과 처절히 싸우는 그의 모습은 차라리 치열한 내적 갈등에 가까워 보인다.

    그가 활동하는 고담시는 범죄가 난무하는 무법 도시다. 고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마천루 빌딩(엄청난 부), 매캐한 매연(깊은 심연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떤 사악함), 번쩍이는 경찰 경광등(역할이 미약한 도덕적 신념) 등이 뒤섞인 암울한 현대 도시의 풍경은 배트맨의 서사에 힘을 더한다. 박쥐가 날아다녀도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도시랄까? 피폐한 브루스 웨인의 영혼이 그대로 투영된 듯, 비가 내리는 마천루 빌딩 위에서 암울한 도시를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배트맨의 또 다른 상징이 아니던가. 그가 보는 것이 고담시일까, 자신의 내면일까? 둘 다라고 하면 조금 비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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